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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2023-10-20 02:45

 아침 6시가 되면, 이소나미 해안에 위치한 한 집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널따란 창을 지나 어스름한 햇빛이 거실로 떨어지면, 아침을 맞이하러 나오는 그림자가 하나. 잠에서 금방 깨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털며 방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퍽 익숙한 걸 보면, 이처럼 아침을 맞는 것이 일과로 자리한 모양이다.


 “오늘은 날씨가 나쁘지 않네. 겨울 같지 않은 날씨야.”


 이런 날은 운동이 제격인데, 그가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마주하고는 덧붙인 말이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그날의 운동을 생각하는 것. 그것은 그가 아주 어렸던 날부터 이어지던 습관 같은 것이라. 아무리 타인과 생활을 함께하게 되었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 듯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아직 아침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자신의 동거인이 떠오른다. 자신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단 한 사람밖에 없을, 사랑하는 이. 그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피어난다. 요코, 마에모리 요코. 새삼스러운 이름 몇 자가 혀 위를 구른다. 요코라고 부르는 게 더 어색해진 것은 비단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 코코? 상대는 곤히 잠들어 있을 게 뻔하니, 구태여 입 밖으로 문장을 뱉지 않는다. 애당초 낯간지러워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리 없지만……. 그가 알고 있는 상대라면 분명 웃으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부끄러움을 감춘 말만을 톡 던지겠지.


 부엌에서 가볍게 물을 마시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상대를 깨우려는 듯한 기색이다. 아침부터 머릿속에 상대에 관한 것만 떠올랐던 탓에, 이 시간을 혼자 보내기엔 쓸쓸했던 게 아닐까. 아무리 햇볕이 따뜻한들 한낮에 비하면 어둑한 시간이니까. 그는 본디 한낮의 여름을 사랑하던 사람, 그가 맞이한 게 겨울의 아침이라면 그 시간을 밝혀줄 이를 찾으러 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너무 일찍 깨우는 거 아니냐고 투정을 부리려나……. 그래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 제니야 리온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상대를 깨우고, 같이 이소나미의 바다를 거닐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산책을 마친 후에는 함께 요리한 간식을 먹고, 둘만의 시간을 언제까지고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요코를 보고 있노라면 차마 손을 뻗지 못한다. 조금만 손을 뻗고 나면 상대는 잠에서 깨어날 텐데, 작게 하품하며 웅얼댈 것이 뻔한데도. 바라는 것이 있음에도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아끼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실은 그 무엇보다도. 이렇게 잠에 빠진 상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지금의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요코 자신도 모를 표정, 얼굴, 습관. 그런 것을 관찰하고 있자면 시간이 참 빨리도 흘러서. 몇 분이고 관찰할 뿐이다. 이렇게나 무방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라는 안도감, 왜 이런 모습을 더 빨리 볼 수 없었는가 하는 후회, 앞으로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질투까지. 그 모든 감정을 느끼는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했다. 상대는 알기나 할까, 이 자그마한 얼굴을 보면서 수십의 감정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모르길 바란다. 제 감정에 놀라 상대가 도망칠까 두려우면서도, 이 감정을 알아준다면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서.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시간은 7시를 지난다. 아, 이제는 정말 깨워야 할 시간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관찰하고 있는 것을 들킬지도 모른다. 아직은,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도 사랑스러운 감정이거늘. 코코, 일어나야지. 작게 소곤거리며 볼을 쓰다듬으면, 미적지근한 온기가 서로 옮겨붙는다. 그 온기가 못내 기꺼운지 두어 번 얼굴을 비비적대다가, 몸을 몇 번 뒤척거리다가, 오래도록 감겨 있던 눈이 깜빡깜빡.


 함께하는 두 사람의 아침이, 이제야 시작된다. 이미 아침이 밝아진 지는 두어 시간이 지났을 터인데도, 제니야 리온은 그렇게 느꼈다. 제 평생 가까이 지켜오던 아침의 시작이, 이제는 허전하게만 느껴진다고. 마에모리 요코라고 하는 상대가 없다면, 영원히 제 아침은 시작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제 하루가 되어버린 상대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